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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연성

4

"..슬레이드?"

주인도 없는 안전가옥에 홀로 앉아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슬레이드 윌슨, 세간에서는 데스스트로크라고 불리는 자였다. 제이슨은 살짝 피곤하단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몇 번 대준 게 이렇게 네 멋대로 찾아와도 된다는 허락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군"

상대가 뭐라고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겠다는 얼굴로 제 할 말만 하는 모양새가 그 누가 봐도 슬레이드였다. 적어도, 환각은 아니란 소리였다. 제이슨은 어깨를 으쓱이며 쓰고 있던 헬멧을 벗었다.

"그래서, 왜 온 건데"
"..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걸 보니, 또 그놈과 만났나 보지?"
"알면 알아서 좀 꺼지든가"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제이슨의 까칠한 태도에 진작 나가떨어졌겠지만, 상대는 슬레이드였다. 슬레이드는 아주 잠깐의 고민하는듯한 표정을 보여주더니,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제이슨의 몸을 들어 안았다. 당황한 제이슨이 그의 두터운 팔을 있는 힘껏 때리며 버둥거렸지만 평범한 인간과 유전자 자체가 다른 그의 힘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대체, 무슨- 읏, "

슬레이드는 제이슨을 들어다가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제이슨이 발버둥을 치며 몸을 일으키려고 하기 무섭게 다시 그의 어깨를 잡아 누르고는 그대로 이불까지 꼼꼼히 덮어주는 슬레이드였다.

졸지에 꼼짝없이 이불에 온 몸이 감긴 제이슨은 도대체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냐는 듯한 얼굴로 슬레이드를 노려봤다. 하지만 슬레이드는 아무 말 없이 그를 꽉 끌어안을 뿐이었다.

"피곤해 보이는데 좀 자지 그래"
"너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잠이 오겠냐?"
"나는.."
"아, 됐어. 말하지 마"

제이슨이 질린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말을 끊었다.


 슬레이드와 이런 사이가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충동적인 선택에 불과했었다. 그 날따라 신경을 거스르는 빌런들이 너무 많았으며, 그 날따라 부품이 망가지기라도 했는지 총알이 제대로 발사되지 않았고, 그 날따라… 딕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 떠나가질 않았었다.

한 마디로 스트레스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상태였다는 얘기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연찮게도 적을 무참히 썰어내고 있던 슬레이드와 마주쳤고, 그가 평소 딕과 깊은 사이이지만 그게 결코 좋은 쪽은 아니었다는 걸 상기해낸 나는, 단걸음에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을 건넸었다.

'나랑 잘래?'

그러니까, 그 얘기를 들은 슬레이드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워 보였다. 나와 똑같이 얼굴을 가리는 헬멧을 쓰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수저로 밥을 떠서 먹는 것보다 총알을 장전하는 게 더 익숙할 놈이 그거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 탄창에서 계속 손을 미끄러뜨리고 있었으니, 굳이 '놀랐냐?'라고 물어보지 않아도 그가 얼마나 당황해하고 있었는지는 대강 예상이 갔다.

자기 파괴적인 면을 섹스로 해소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젠 그게 버릇이 되어 그러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였었다. 아무리 충동적이었다지만, 슬레이드에게 그런 말을 건넨 것도 결국 그런 일의 연장선이었을 게 분명했다.

슬레이드와의 섹스는, '자기 파괴적인 면을 해소'한다는 말에 걸맞게 상당히 고통스러웠었다. 배려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마치 짐승과도 같은 움직임이 썩 마음에 들었다. 비록, 자신이 슬레이드와 그런 관계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된 딕이 꽤나 경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상상을 하며 미약하게나마 만족감을 느낀 스스로가, 미치도록 역겨웠지만 말이다.

예상과 다르게 그와의 관계는 그 뒤로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묘하게 다정해지는 손길이 신경 쓰여 그만 끊어내려고도 했지만, 이 빌어먹을 놈은 그럴 때마다 귀신같이 찾아와 이렇게 답지 않은 행동을 하며 제이슨을 심히 골치 아프게 만들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더이상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걸 몸소 보여주며 그를 등진 상태였지만 허리에 감긴 그의 팔에 자꾸만 시선이 가는 건 어찌할 수가 없었다.

"… 오늘은 안 해."

결국 제 발 저린 제이슨이 먼저 앓는 소리를 냈다.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슬레이드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제이슨은 괜히 귓가가 달아올랐다.

"난 한다고 한 적도 없는데"
"아니, 시발… 네가 와서 하는 게 그런 짓밖에 없으니까-"
"그래, 그래. 알겠어. 안 건들 테니까 좀 자두지 그래"

슬레이드는 그렇게 말하면서 제이슨을 껴안은 팔에 힘을 줘 자신에게로 더 끌어당겼다. 그에 제이슨의 신경이 어쩔 수 없이, 아래로 향했지만 이내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건들지 않는다 했으니, 진짜 안 건들겠지. 어차피 지금 상태로는 제대로 받아주지도 못할 것이다. 설마, 아무리 그래도. 자고 있는 사람을 건드는 취향 같은 건… 없겠지. 아니, 없어야만 했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걱정부터 앞서긴 했지만 근 이틀 동안 겪었던 일 덕분에 몸은 너무도 피로한 상태였고, 그 피로를 해소하는 게 더 우선이었다. 그렇게 제이슨은 등 뒤에서 들리는 일정한 숨소리에 묘한 안정감을 느끼며 수마에 빠져들었다.



'흐, 하아.. 제발, 제발… 브루스… 아니야, 난 아직..'
'쉬이- 괜찮아, 제이슨…'

괜찮아, 괜찮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빛이 서서히 드는 새벽, 제이슨은 꽤 이상한 꿈을 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환각에 시달리는 자신을 누군가가 밤새 끌어안고 달래준 것만 같은…

"..슬레이드"

불현듯 자신이 밤새 누구와 함께했는지를 떠올린 제이슨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침대 옆 협탁에 꽂힌 작은 칼 한 자루를 보며, '꿈'이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띠링'

적막만이 감도는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알람이 짧게 울렸다. 메시지가 도착했다고 알리는 울림이었다. 제이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탁자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로이가 아닌 다른 캐를 집어넣어봤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스토리에 중요하게 작용될 거 같진 않지만 ㅎㅅ

다음 타자는 다시 한 바퀴 돌아서 페이드님!!!

잘 부탁드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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