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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연성

3

 스케어크로우의 공포 가스를 맞은 것처럼 모든 것이 공포로 물들어져 전신이 딱딱하게 굳었다. 코를 찌를 듯이 지독한 화약 냄새, 매캐한 먼지들, 서늘한 죽음의 형태가 생생하게 전해져왔다. 차갑게 바스라져 있는 자신과 그것을 애타게 붙잡고 있는 브루스, 그리고 무기력하게 이 모든 걸 관망하는 나 자신. 제이슨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앓는 소리도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내어 겨우 브루스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뿐이었다.

 

 “레드후드, 이봐! 정신 차려!”

 “브루스.”

 

 레드후드의 어깨를 붙잡고 앞뒤로 흔들던 나이트윙의 손이 멈췄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분명한 3음절의 단어였다. 깨진 헬멧의 틈 사이로 보이는 레드후드의 시선은 여전히 허공을 향해 있었다. 이후 나이트윙이 재차 레드후드의 이름을 불렀으나 레드후드의 입은 굳게 닫혀 열릴 줄 몰랐다.

 나이트윙이 파악하기에, 제이슨이 맞은 공격은 정신적인 허점을 파고 들어가는 공격처럼 보였다. 그의 상태를 봐서는이제는 망설일 틈이 없다. 그는 배트케이브에 곧장 연락을 넣었고, 그를 들쳐메고서 빠르게 근처에 주차된 차에 태웠다. 차에 태우고 나서도 제이슨이 크게 반응하지 않아서, 딕은 이를 악물고 액셀을 세게 밟았다.

 

 제이슨이 보는 장면은 어느새 답답하고 좁은 공간으로 바뀌었다. 축축하고, 공기가 희박해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 힘든 비좁은 곳이었다. 그는 이런 낮은 천장이 너무나도 싫었다. 제이슨은 끔찍하게도, 여기가 어딘지 너무나도 잘 알았다.

 

 “젠장, 젠장, 젠장……!!”

 

 제이슨은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꾹 억누르고 미쳐 날뛰는 감각을 제어하려고 애썼다. 이성은 지금 이 모든 것이 환각이라고 설명하는데 흙냄새와 시체 보존제의 냄새가 너무나도 생생해서 이성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휘발되기 직전인 기억의 틈새에서 간신히 경험을 떠올려 허리띠에서 버클을 분리하고, 그대로 관뚜껑을 파내기 시작했다.

 나무 관뚜껑을 뚫고, 얼굴로 우수수 떨어지는 흙더미를 삼켜내며 힘겹게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제이슨의 양 손톱은 이미 부러졌고, 손가락 끝은 피에 물들은 흙 알갱이로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아픔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얼른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나는.

 제이슨은 살려달라 울부짖으며 손을 뻗었다.

 

 “제이슨!! 괜찮아? 진정해, 여긴 안전해.”

 “제발, 으윽, 살려줘.”

 “제이슨, 제이버드.”

 


 

 얌전히 검사대에 누워 검사를 받던 제이슨은 갑자기 미친 듯이 팔을 휘둘러댔다. 손과 팔은 무언가 파내려는 것처럼 어색한 각도로 구부려진 상태였다. 딕은 제이슨의 양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꽉 맞잡았다.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제이슨의 손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제이슨은 흙더미를 파고 올라오자마자 보이는 딕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플래시백을 겪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맨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딕의 뜨거운 체온이 손끝에서부터 피어올라 제이슨의 흐트러진 정신까지 스며들었다.

 불규칙하던 호흡이 점차 가라앉았다. 딱딱하게 굳었던 몸에도 긴장이 풀리고 이성이 좀 돌아오자 그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일단 딕과 잡고 있던 손을 대차게 떼어냈고, 상체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진찰 기기들을 전부 뜯어냈다. 딕이 아직 더 검사해야 한다고 나무랐지만, 그의 말을 들을 제이슨이 아녔다. 딕은 강제로 제이슨을 기절시키려 했지만, 제이슨은 딕의 생각보다 플래시백에 익숙했기에 금방 회복해 딕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제이슨은 배트케이브가 싫었다. 정확히는 이곳에 돌아올 때마다 과거의 향수에 젖는 자신이 싫었다. ‘가족이 되길 거부하면서 자꾸 미련이 남아 제 발로 돌아오는 멍청한 제이슨 토드가 싫었다. 누구 말마따나 학습 능력이 없는 거지. 제이슨은 혼자 자조하듯 웃었다. 특히딕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열등감에 허우적거리는데, 거기에 더해서 약점까지 들켜버렸다.

 제이슨은 대충 옷을 껴입고 헬멧을 옆구리에 들었다. 어두운 기억이 또 떠오르기 전에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머릿속으로 아직 딕에게 들키지 않은 안전가옥이 어디 어디였는지 좌표를 떠올렸다.

 

 “제이슨.”

 “뭐요? 설마 내가 여기서 얌전히 검사 받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이슨은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속으로 브루스에게 대답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제발 떨리지 않았길 빌었다. 이상하게 지금의 브루스의 목소리와 이제 떠올리기도 싫은 에티오피아의 말투가 자꾸만 겹쳐 들렸다. 제이슨은 이어지는 브루스의 대답을 듣지 않고 바로 뒤돌았다. 뒤에서 브루스가 제이슨을 향해 나직하게 말을 걸었지만, 제이슨의 귀에는 다그치는 소리로 들렸다. 이대로는 안전가옥에 도착하자마자 귀를 잘라내 버릴 것 같아서 제이슨은 서둘러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었다. 또 다른 추한 모습을 보이기 전에 얼른 이곳을 떠나야 했다.

 

 딕과 브루스의 추적을 피하려고 일부러 복잡하게 운전해 겨우 안전가옥에 도착했다. 사실 제이슨이 급하게 만든, 안전가옥이라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급조된 곳이라 이곳에서 오래 머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약간의 시간을 벌기엔 충분했다.

빌런빔의 효과가 뭔지는 몰라도, 자연적으로 해독될 때까지 고담에서 도망쳐야겠다. 제이슨이 내린 결론이었다. 확실한 건 배트맨 패밀리와 함께하면 안된다는 사실 뿐이었다. 특히 딕에게서, 반드시.

 

 불이 다 꺼진 안전가옥에 들어가서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켠 순간, 제이슨은 의외의 인물이 눈앞에 있는 것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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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레이 연성 3번째 솟느입니다! 딜리님 잘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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